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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청동에서 쌓아가는 우리만의 추억: 예술과 맛, 그리고 함께하는 영어 공부

by myinfo92183 2026. 7. 20.

우리 세 명의 모임에는 오래전부터 지켜온 소소한 규칙이 하나 있습니다. 아직 가보지 못한 좋은 곳을 골라 직접 찾아가고,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느끼며 우리만의 추억을 차곡차곡 쌓아가는 것입니다. 여행이 거창할 필요는 없어요. 멀리 떠나지 않아도, 서울 안에서도 우리가 아직 밟아보지 못한 골목과 공간은 얼마든지 많으니까요.

그리고 그 여정에는 두 가지가 절대 빠지지 않습니다. 하나는 맛집이에요. 아무리 좋은 걸 봐도 배가 고프면 감동이 반감되는 법이죠. 좋은 풍경 뒤에는 반드시 든든하고 맛있는 한 끼가 따라와야 그날의 나들이가 완성됩니다. 다른 하나는 영어 공부예요. 해도 해도 끝이 없어서, 아마 죽을 때까지 붙잡고 가야 할 숙제 같은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어딜 가든 마지막엔 카페에 앉아 영어책을 펼칩니다. 보고, 먹고, 배우고. 이 세 가지가 우리 모임을 지탱하는 든든한 기둥이에요.

1. 한미뮤지엄 삼청, 그리고 유영호 작가의 'Bridge of Song'

오늘의 목적지는 한미뮤지엄 삼청이었습니다. 입장료는 1인 15,000원이고 전부터 꼭 한 번 보고 싶었던 작품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바로 유명한 유영호 작가의 조형물 'Bridge of Song'입니다.

거대한 하얀 인체의 팔 위를, 작은 사람들이 줄지어 조심스레 걸어가는 형상입니다. 커다란 팔이라는 육중한 존재 위를 작디작은 사람들이 건너간다는 설정 자체가 묘한 긴장감과 서정을 동시에 자아냅니다. 마치 거대한 존재에 기대어 서로를 향해 나아가는 사람들의 모습 같기도 하고, 노래(Song)라는 다리(Bridge)를 통해 이어지는 관계를 형상화한 것 같기도 해요. 규모가 주는 압도감과 디테일이 주는 섬세함이 한 작품 안에 공존하는 점이 인상적이었습니다.

한미뮤지엄 삼청
한미뮤지엄 삼청에 있는 유영호작가의 'Bridge of Song'

 

작품은 '물의 정원' 위에 설치되어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고 들었는데, 사실 막상 가보니 이름과 달리 물은 잘 보이지 않아 조금 아쉬웠어요. 머릿속으로는 잔잔한 수면 위에 하얀 팔이 떠 있고 그 위를 사람들이 걷는, 물과 조형물이 어우러지는 장면을 상상하고 갔던 터라 기대와 실제 사이의 간극이 느껴졌달까요.

그리고 하나 더 아쉬웠던 점이 있습니다. 이렇게 존재감이 뚜렷한 작품이라면, 좀 더 넉넉하고 탁 트인 공간에 놓였을 때 그 압도감이 훨씬 살아나지 않았을까 싶었어요. 작품 자체의 힘은 분명한데, 공간이 그 힘을 온전히 담아내지 못하는 느낌입니다. 예술은 작품 그 자체만큼이나 그것을 둘러싼 여백과 환경이 중요하다는 걸 다시 한번 실감했습니다.

2. 지대가 높아 더 고즈넉한 삼청동 풍경

그럼에도 이곳만의 매력은 분명했습니다. 한미뮤지엄 삼청은 지대가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어, 내려다보이는 삼청동 일대의 풍경이 유난히 고즈넉하게 다가왔어요.

낮은 지붕들과 구불구불한 골목, 오래된 건물과 나무들이 어우러진 풍경을 위에서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으면, 이곳이 서울 한복판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만큼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듯한 여유가 밀려옵니다. 도심의 소음은 저 아래로 잦아들고, 우리 셋만 잠시 다른 속도로 살아가는 기분이에요. 작품 앞에서, 또 풍경 앞에서 한참을 서성이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눈 것만으로도 오늘의 나들이는 충분히 값졌습니다.

3. 얼큰함이 당길 땐 삼청동 김치찌개집으로

관람을 마치고 나니 어김없이 배가 고팠고, 하필 그날따라 얼큰한 게 간절히 당겼습니다. 우리는 망설임 없이 삼청동의 한 김치찌개집으로 향했어요.

돼지고기가 넉넉하게 들어간 김치찌개는 국물이 진하고 얼큰해서, 한 숟갈 뜨는 순간 속이 확 풀리는 느낌이었습니다. 잘 익은 김치의 새콤함과 돼지고기의 기름진 감칠맛이 어우러진 국물에 밥을 말아 먹으니 한 그릇이 순식간에 사라졌어요. 푸짐한 양에 정직한 맛입니다. 관람으로 채운 마음과 찌개로 채운 배가 나란히 든든해지는 순간이었어요. 좋은 걸 보고 난 뒤에 먹는 뜨끈한 한 끼가 이렇게 완벽할 수 있다니 새삼 감탄했습니다.

삼청동 김치찌개
김치찌개 맛집인 '삼청동김치찌개'

 

4. 스타벅스 경복궁사거리점에서, 오늘의 영어 한 줄

배를 든든히 채운 뒤 다음 코스는 언제나 정해져 있습니다. 우리는 스타벅스 경복궁사거리점에 자리를 잡고, 늘 하던 대로 영어책을 펼쳤어요.

우리의 교재는 언제나처럼 'Diary of a Wimpy Kid(윔피 키드)'입니다. 어려운 단어나 복잡한 문법 해석이 필요한 책은 아니에요. 오히려 그 쉬움 덕분에 문장 하나하나가 마음에 콕 박힐 때가 있습니다. 오늘 유독 눈에 들어온 문장은 이거였어요.

"the thing i'm finding out is that some people don't really appreciate it when you're trying to be helpful."

도움을 주려 애써도, 그걸 고맙게 여기지 않는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아가고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문장 자체는 정말 쉬운데, 이상하게 오래 곱씹게 되었어요. 왜냐하면 이건 단순한 영어 문장이 아니라, 살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 마주하게 되는 삶의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주변을 둘러보면, 좋은 마음으로 건넨 손길이 늘 좋게만 받아들여지는 건 아니라는 걸 느끼게 하는 사람들이 가끔은 있어요. 선의가 오해받거나, 도움이 부담으로 돌아오는 순간들이죠. 그럴 때 우리는 조금 씁쓸해지지만, 동시에 배우기도 합니다. 도움에도 방식과 거리가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모든 선의가 보답받길 기대해선 안 된다는 것을요. 쉬운 문장 한 줄이 세 사람의 대화를 이렇게 깊은 곳까지 데려갈 줄은 몰랐습니다.

5. 별것 아닌 하루가 추억이 되는 순간

작품 하나, 찌개 한 그릇, 영어 문장 한 줄. 따로 떼어놓고 보면 별것 아닌 것 같은 이 조합이 모여, 오늘도 우리 셋의 추억 한 페이지가 알차게 채워졌습니다.

거창한 이벤트가 아니어도 좋아요. 함께 무언가를 보고, 함께 맛있는 걸 먹고, 함께 한 문장을 곱씹는 것. 그 평범한 시간들이 쌓여 우리만의 이야기가 되어갑니다. 다음엔 또 어디로 떠나 어떤 것을 보고 느끼게 될까요. 벌써 다음 나들이가 기다려집니다.